석면의 어원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03-23 11:32 조회2,317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석면의 어원은 그리스어에서 유래되서 영어에서 말하는 <불멸의 물건> 즉 A=not, svestos=quenchable
(멸하다)가 Asbestos로 된다.
석면의 사용은 수단과 케냐에서는 석기시대에 이미 사용한 흔적이 있으며 핀란드에서는 기원전(紀元前)
2500년에 석면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다.
역사시에 들어와서는 그리스, 이집트, 로마 등의 기록물에 등장하게 된다.
그것에 따르면 기원전 4~5세기 그리스의 아테네신전(神殿)의 램프심지, 로마 웨스터 신전의 <영원의 불>
의 심지 그모두가 석면이였다. 더욱이 내프킨, 여성의 머리장식, 상류계급의 의복, 황족(篁族)의 시의(屍依)
등에도 사용되었다.
기원전 77년에 로마에서 완성한 서양최초의 백과사전(百科辭典)인 박물지(博物誌)프리니우스편에는
<타기 어려운 린넬이 발명되어 살아있는 린넬로 불리워 지고있다. 인도의 뜨거운 토지에 생겨나는 희귀한
식물원료로서 짧은 섬유이기 때문에 짜기가 어렵다. 그 때문에 소량이라도 발견되면 최그급의 진주에도
떨어지지 않는 고급품으로 알려진다> 등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책은 중세기에 이르기 까지 최고로 권위 있
는 과학자로서 유럽각지에서도 널리 읽혀져 후세의 사람들의 석면에 대한 인식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되
었다.
중국의 삼국지, 위지등에서의 석면포에 대한 표현은 <불로 태우면 더욱 아름답게 된다>의 뜻을 가진 화완
포였다. 기원전 50년의 이집트 에서는 이러한 심지를 만들 때에 기술자가 분진의 흡입을 막기 위하여 마스
크를 착용 했다는 기록이 있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1766년의 강호시대에 평하원내가 2cm각(角)의 석면포 제조(섬유상 사문암을 소재로
하였다고 함)에 성공하여 화완포의 이름으로 타지않는 헝겊을 만들어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으나 그때에
이미 나가사끼에는 폴란드로부터 석면제 대판(大判) 내프킨의 도래(渡來)하여 있었다.
영국에서는 산업혁명기에 돌입하여 석면의 공업적 이용이 시작된 것이 이 시기로 증기기관의 보온,단열재,
피스톤의 패킹으로 쓰여져 주목을 받게 되었다. 석면의 방적법이 개량되어 석면포, 석면지가 대량생산 되게
된 것과 1877년 캐나다의 케베크 지방의 남아프리카에서 대광맥이 발견되었던 것은 거의 같은 시기 였다.
영국, 독일, 프랑스, 스페인, 오스트리아 등 각국에서도 신광맥이 계속하여 발견되었다. 1862년의 런던만국
박람회에는 캐나다 산(産)의 석면원석이 전시되고 또 6년 후의 파리만국박람회에서는 석면제품이 전시되어
석면의 대량사용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리게 되었다.
공업용 원료로서의 석면이 가진 특성이 해명되어 진 것은 20세기초로 석면은 이때부터 건설에서 자동차의
제조에 이르기까지 3,000여 종류에 달하는 공업제품에 사용되어 왔다. 특히 전쟁은 석면을 대량으로 필요로
하여 석면산업에 호황을 가져왔다.
그것은 엄청나게 많은 양의 군함, 전차, 군용기 등이 두꺼운 단열재를 필요로 하며 방독마스크가 필터용 청
석면을 필요로 하였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소포뭄으로서 군수공장에서는 여자들끼리 석면 속에서 일하게 만들었다.
제 2차세계대전 중에 일본이 이러한 공장에 강제로 끌고 온 조선인과 강제로 동원된 소년 소녀까지도 희생
되었다.
한국에서 석면이 공업용으로 대량으로 쓰여지게 되었던 제1시기가 바로 일본에 의한 것이며 그들이 일으킨
전쟁에 의한 결과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아래의 표는 과거의 세계각국석면 산출량의 예를 보여주고 있지만 한국을 포함하여 전세계에서 광범위하게
산출되고 있었음에 놀라움을 감출 길이 없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